안철수는 새정치라는데.. 사실은..

By | July 1, 2017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산다.  미국 영어단어에도 white lie라는 말이 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치인이 혹은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사회 지도층의 거짓말은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기에 엄격하게 검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라가 제대로 흘러가고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이번 국민의당 대선날조 사건을 통해 안철수 전 대선후보를 돌이켜보고자 이번 기사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이 기사를 준비하다가 놀란 것은 너무나도 많은 안철수의 거짓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해명되지 않은, 명백한 거짓말들만 나열해도 독자들에게 스크롤압박이 심해질 정도로 길다.  그래도 알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열해보고자 한다. 물론 나열되는 것은 필자가 아는것만이다.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아는 것까지만 적어본다.

안철수는 한때 한국정치사에서 신화적인 존재였다. 2011년 6월 MBC 예능프로인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에서 시작된 그의 신화는 그를 사회 주요 지도층 인사로 올려 놓으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감동을 사람들 마음속에 심으면서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허상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계속 나오면서, 그리고 두번의 대선을 거치면서 2017년 오늘에 이르러서는 국민들에게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허상이었는지만을 보여주는 초라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음은 그간 안철수가 해왔던 거짓말 사례들이다.

1 “미켈란젤로바이러스를 잡는 백신을 만드느라 밤을 새고 혼자 입영열차를 탔다. 훈련소 첫 밤에야 깨달았다. 가족에게도 안 알리고 입대를 하였다..”
하지만 안철수의 아내인 김미경은 “입소날, 기차에 태워보내고 돌아오는데 무지 섭섭했다.”라고 얘기한다. 더군다나 그가 탓다는 입영열차는 1985년 폐지됐다가 1998년 부활되서 그가 입영하던 1991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91년 2월 입대했는데,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는 91년 4월에 최초 발견되었다.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를 만들다가 존재하지 않는 기차를 타고 입영했다는 것이다.

2. 1988년 8월에 안철수자신이 세계최초로 백신을 개발했다고 말했으나, 최초 바이러스는 1970년에 발견되었고 최초의 백신은 8비트 컴퓨터에 등장한 컴퓨터 바이러스의 경우 86년 등장한 피터 페리의 애플2 백신이 최초이며, 현대 백신 프로그램 방식인 시그니처 기반 진단법의 탐지 프로그램은 G Data라는 백신 프로그램을 거쳐, 87년 독일에서 번드픽스(Bernd Fix)가 제작한 프로그램이 시초라고 한다. 1988년에는 미국내 백신제조사들이 모여 협회를 만들고 있던 시점이었다.

3.”전세를 오래 살아봐서 집없는 설움을 잘 안다”고 안철수는 말했다.
그러나 그가 전세를 살았다는 집은 어머니 소유였다.어머니가 마련해준 12억 상당의 아파트에 살면서 자신은 전세를 살기 때문에 집없는 설움을 안다고 얘기한 것이다.

4. “단란주점은 가보셨어요” 라는 질문에 “단란이 뭐지요? 단란하게 노는 곳이냐”고 되물으며 “술을 원래 못 마시고 여종업원이 배석하는 술집 자체를 몰라요.”라고 얘기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그런데 ‘안철수연구소’의 창립멤버들은 안철수와 술을 마셨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월간지 신동아 기사에는 전직 고위공직자가 안교수와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재벌 2세 3세와 힘께 하돈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의 멤버들은 안철수와 함께 2차까지 갔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후 안철수는 “술집에는 갔었지만 술은 먹지 않았다”며 스스로 방송에서 한 말을 바꾼다.

5. “미국으로 떠나면서, 주식을 직원들에게 몽땅 나눠줬어요. 소문내지 말라고 하며 조용히 주고 떠났어요”고 얘기했지만 실제 1.5% 정도 전환사채로 나눠줬다고 한다. . 기억하겠지만 닷컴버블시절엔 직원들의 대기업 이직을 막기위해 주식을 배분해 주는 것이 그저 관행일뿐이다.그러면서 본인은 37%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배당금으로 년 14억원 이상을 가져간 것이다.

6. “미국의 거대보안회사(맥아피社)가 1,000만불 이라는 거액으로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눈앞의 이익보다는 SW산업보호와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과감히 거절했다.”는 말 한마디로 그는 그는 공익(公益)경영의 대명사로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안철수 신화’의 시금석이 된것이다. 물론 그 어떠한 증빙자료 내어 놓지 못하고 있다. 맥아피사가 공개한 당시 보도자료에 의하면 안철수는 맥아피사와 ‘합작회사’를 국내에 설립하는 협정을 맺었고 이는 오히려 그들이 한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교두보를 놓아주려 했던것이다.  1000만불이면 거의 100억이다. 안랩의 당시 연간 매출액은 6억 이하였다.

7. 그는 입대전 ‘단국대 최연소 학과장’이었다고 한다.
89년에 안철수는(27세) ‘전임강사’로 단국대 의대에 취업한다 그리고 1년 남짓후에 입대했다. 제대후에는 복직이 안되 10개월을 실업자로 놀았다고 얘기한다.
2001년 9월의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94년 4월)제대 후 학교에서(단국대 의대) 복직신청을 안받아줬다. 아내의 수입으로 사는 게 힘들었다. 10개월간 실업자로 지내다가 창업했다” 의예과 학과장이었는데 복직이 안된다?

8. “세계적 석학, 안철수”라고 한다
그럼 안철수의 학문적 업적을 보자, 우선 논문에서 보면 군복무중에 썼다는 2편의 논문과 잡글1개를 를 포함하여 논문 5편이 전부이다. 논문을 안 쓰는 세계적 석학인가? 근데도 그는 포항공대 이사, 카이스트석좌교수, 서울대석좌교수가 되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채용되었는지?
그럼 학력을 보자 미국 와튼스쿨에서 MBA수료를 했다고 했었다. 공학박사를 땄다는 소문도 있고.
하지만 실제 그는 미국동부 펜실베이니아가 아닌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와튼스쿨 분교에서 이루어지는 월 2회의 주말수업을 통해 EMBA를 다녔을 뿐이다. 한국에도 많은 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과정처럼, 기업인들이 2억원대의 고액 수업료를 내고 경력을 사는 모임같은거 말이다.

9. “아내는 마흔에 미국 대학 로스쿨에 진학했다. 의사와 변호사를 함께 하고 있다. 나와 같은 융합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
근데 변호사라면 누구를 변호했었는지 실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융합연구라는데 관련 논문은 없다. 하지만 안철수 아내는 카이스트 교수로, 서울대 교수로 ‘1+1’으로 안철수와 세트메뉴로 취업하여 재직중이다.

10. “안철수연구소에는 나의 친척이 한 명도 없다. 나의 의도적 실천이다”,
“친척을 채용하게 되면 다른 직원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그러면 실무자들이 소신 있게 일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코스닥에 등록(2001)되기전에 친인척들을 고용했었다.
김미경(아내) 1998~2001 이사, 안상욱(동생) 1997~2001 감사, 김우현(장인) 1995~1998 이사.

11. 2012년 5월 부산대 강연,  “고교시절 야구장에 강제로 응원을 따라갔는데 상대 경남고 투수가 최동원 선수였어요. 그때 최동원 선수가 공을 너무 잘 던져서, 잘 던지면 야유하고 실투하면 좋아서 박수치고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동원은 안철수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이미 대학생이었다. 안철수는 77년 부산고에 입학해 80년 졸업한 후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지만 최동원 투수는 경남고에 1974년 입학해 1977년 졸업하고 이미 연세대에 들어갔던것이다.

12, “백신을 무료로 나눠줬다” 기부천사로서 공익 경영을 한 것 같지만 그 당시엔 전자결제수단이 없었다. 또한 많이 알려져야 나중에 돈이 되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했다. 당시 국내 최고의 워드프로세서었던 ‘아래아한글’ 이라던지 통신 소프트웨어였던 ‘이야기’등도 모두 공개소프트웨어였다. 당시 미국 내 백신개발업체인 시만텍, 맥아피등 도 모두 초기 시장점령을 위해 무료 배포하고 있었다. 무료가 아니면 배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13. “월급만 받고 살았다”고 하지만 실제 안철수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안철수연구소에서 받은 배당금만 104억.  2005년에 무상증자로 늘린 주식 중 10만 주를 팔아 최소 20억 원을 받았다.

거짓말을 더 나열하려면 하겠지만 여기서 그만두고 그동안 논란거리가 되왔던 사항도 몇개 알아보자

1. 안랩 신주 인수권부 사채(BW) BW저가발행
1999년 10월 안철수연구소는 안철수를 대상으로 25억 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으로 발행한다. 안철수는 2000년 10월 신주인수권을 행사하여 336억 원어치의 주식을 소유하게 된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기에 불기소처분했다.

2. 군생활은 39개월의 공백기였고, 고문이었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빍히고 군복무 1년차에 경남 진해에서 주말이면 매주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위수지를 이탈하였고 비행기 마일리지가 미국 왕복이 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3. 안철수연구소는 중소기업 지원금을 위해 직원수를 300명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초과 인력은 전부 일용직으로 채용하였다.

4. 포스코 사외이사시에는 미국으로 유학가서 이사회 참석을 명분으로 항공료 600만원 짜리 1등석을 타고 다녔다. 이때 포스코 이사회에서 불우이웃돕기성금에는 반대하고 박정희 기념관 후원사업과 포스코 문어발식 기업확장에는 찬성하였다.

5. 이명박 정권하에서 안철수 부부는 카이스트 교수를 거쳐 서울대 교수로 특혜 채용되는 의혹이 있었고 안철수연구소는 V3를 관공서와 공공기관에 독점적으로 공급되는 특혜를 받으며, 안철수는 이명박정부의 요직을 겸하였다. 이러다보니 ‘MB 아바타’라는 유명한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6. 2012년 안철수가 대선출마를 저울질하는 동안 안철수연구소 주가가 폭등하여 수년간 5천원~3만원의 박스권에 갇혀있던 주가가 10만원이상 고점을 찍고, 안철수는 기부한다는 명목으로 10만원대일때 주식을 매각하여 1000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2012년 출마전 5년간 총 3183만원만 기부했던 안철수는 정치를 위해 기부금를 한다며 86만주를 팔아 누군가의 개미투자자들의 눈물을 짠것이다. 이 당시 안철수연구소 2대주주 역시 주식을 매각해 1,000억원 이상 시세차익을 보았다.

안철수는 정치를 시작하며, ‘도덕성’과 ‘인간미’에 중점을 두고 철저히 자신의 주요 과거행적을 미화하고 조작하여 인위적으로 착한 이미지 만들어냈고 영웅을 필요로 하는 언론에 편승하여 마침내 교과서에도 실리는 ‘인간성과 함께 도덕성을 갖춘 능력있는 전문가’,’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기업가’를 만들어 내었다.
이를 발판으로 오히려 그는 한국 정치판에서 홀로 지고지선(至高至善)한 듯 대한민국 정치판을 호령하려 하고 있다.

정치를 신화로 하려고한 그의 행태는 이번 대선에서도 몇가지 비슷한 사례를 보여준다.

1. 지하철 학생과의 만남 조작 연출
안철수는 대선후보로서 첫 행보로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한 20대 청년의 요청으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실시간 중계하고, 청년이 읽던 책을 선물로 받는다. 그러나 그 청년이 하루전 내일 안철수후보를 만나니 질문을 달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적음으로 연출이었음이 밝혀진다.

2. 문재인 대통령,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아들에 관한 증거를 완전 날조하는 해괴한 행태를 국민의당이 보여준다. (아직 안철수후보와 관련된것은 밝혀지지 않고 수사중이기에 적지 않는다)

이와같이 자신만의 정치신화를 위해 기억을 조작하고, 자신의 구태에는 한없는 관용을 베풀고, 타인의 잘못에는 냉혹한 칼날을 들이대는 그런 행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불신을 키워 결국 한국정치의 희생과 함께 국가적 낭비를 만들어 낼것이다.

그 누구도 뭔지 알 수 없는 ‘안철수의 새정치’
그저 기존의 정치는 특권의 정치이고 거짓과 협잡의 정치이며 국민을 우습게 아는 불통의 정치이기에,  이와 다른 자신의 새정치를 통해 이런 구악을 타파해야 한다고 얘기하는것이 신의 계시를 받고 이 사회를 구하려 왔다는 사이비 종교와 뭐가 다른 것인가?
거짓으로 일관되고 조작으로 점철된 그 행위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