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브레이커 김한길의 재등판

By | April 25, 2017

김한길이 추락하는 국민의당 안철수를 구하고자 등판하였다.
4월 24일 “친박근혜 패권세력이 떠나간 자리에 친문재인 패권이 들어선다고 무슨 정치발전이 되겠느냐”고 주장하며,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를 위해 백의종군하며 힘을 보태겠다”며 지지를 선언하였다.
소속당의 대통령후보를 당원이 지지선언을 하는 희귀한 행동을 떠나 그의 지난날을 돌아보자.

1992년 제14대 총선에 서울 동작구 을에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 이후 제14대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의 공보특별보좌관을 맡았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
1998년에 김대중 정부 출범하자 청와대정책기획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2006년에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되었으나
2007년에 탈당하고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하고 대표를 맡게된다.

그럼 여기서 잠시 지난 2007년 일년동안 일어난 김한길의 정당브레이커 신공을 살짝 엿보고 지나가자.

2007.2.6 열린우리당을 김한길계 국회의원 23명 이끌고 집단 탈당한다. 이 탈당으로 한나라당이 원내1당이 되게된다.
2007.5.7 중도개혁통합신당 창당을 창당하여 대표를 맡는다. (국회의원 20명) 하지만 잉크도 마르기전에
2007.6.27 민주당과 합당, 중도통합민주당을  창당하고 공동대표를 다시 맡는다. 하지만 역시 잉크도 마르기전인
2007.8.3 중도통합민주당을 집단 탈당한다 (김한길계 국회의원 19명)
2007.8.5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및 입당
2007.11.12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 합당 선언, ‘통합민주당’ 창당 예정

단 1년 사이에 5번에 이르는 탈당과 입당을 이용해 정당들의 붕괴와 잔반처리에 그가 얼마나 능숙한지를 보여준다.

2008년 1월 6일 대선 패배로 제18대 총선 불출마와 정계은퇴를 선언
2012년 4월 11일 제19대 총선에 출마하여 광진구 갑에서 당선
2012년 6월 9일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최고위원에 선출
2013년 5월 4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다.

하지만 민주당은 2013년 10월 30일 재보궐선거 (새누리당에 2:0으로 완패)에서 완패한다.

2014년 3월 26일에 안철수와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에 취임한다. 안철수와 러브샷을 연출기억이 난다.


하지만 김한길과 안철수가 주도한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새누리당에 11:4로 완패한다. 이것도호남을 제외하면 11:1로 처참히 박살난다.
물론 결과는 안철수와 함께 동반사퇴.
2016년 1월 3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후 국민의당에 합류하나,
2016년 3월 17일 20대 총선불출마 선언하게된다.

참 오랜기간 한국 정치권을 맴돌던 김한길.
물론 한때는 그 중심에 서기도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2007년 일년동안 보여준 5번에 걸친 탈당과 입당이 보여주는 김한길의 정당파괴신공은,
그의 재등판에서 걱정되는것이 이번 대선 결과가 아니고,
대선후 국민의당이 겪게될 혼란과 분열인 이유이다
그런 분열이 또다른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오는것을 아닐까하는 염려말이다.